스타트업 적응기 #15 – 회고

어찌어찌 우당탕탕 좌충우돌 하다보니 스타트업에 합류하고 서비스 오픈한지 6개월하고 3일이 지났네요.. 스타트업 합류 초기에 이런 저런 새로운 경험들로 인해서 라이프로그를 남길 적절한 곳을 못찾다가 설마 페북은 안망하겠지 싶어서 뜨문 뜨문 글을 올렸는데 오다가다 만났을 때 관심 가지고 읽어보시고 반응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일종의 묘한 의무감 같은게 들고 추가로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6개월 스페셜 요약본으로 회고를 할까 합니다.

보통 스타트업 관련 글은 성공 스토리, 좋은 내용만을 쓰다보니 제가 이야기하는 경험에 기반한 적나라한 글은 같이 고생하시는 분들로 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하고, 일종의 환상이 있으셨던 분들에게는 정제되지 않은 스토리가 재미있으셨나봅니다. 다만, 저는 내부의 이야기를 제 관점에서 가감없이(자극적으로?) 이야기 하다 보니 글 내용이 돌고 돌아서 당사자에게 들어갈까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원래 까칠한 넘이니 그러려니 하겠죠..

거두절미하고 6개월의 경험을 스페셜 버전으로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팀빌딩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중요하다.
  • 스타트업에 합류할 때 계약서는 반드시 써라. (근로계약서 말고..)
  • 오프라인 비지니스는 특히 더 어렵다.
  •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거나 플랜B가 없으면 기업 돈은 받으면 안된다.
  • 페이스북에 떠도는 좋은 말들은 정말로 좋은 말이다. 다만 내가 느끼면 이미 때가 늦는다.

팀 빌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는다

사실 이야기 하나 마나 한 뻔한 내용입니다. 다만, 저의 경우에는 회사에 합류하자 마자 외형 지표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라 저 조차도 팀빌딩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고, 뒤에 합류한 사람이 설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기 싫어서 정말로 한참을 쥐죽은 듯이 조용히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외형 지표 성장이 익숙해지고 사업 환경의 변화로 조직이 흔들리니 취약한 팀빌딩이 회사의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하고야 말았습니다.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재산이고 순전히 사람으로만 돌아가는 스타트업에게는 아주 작은 팀빌딩의 균열이 큰 문제로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계약서를 써라

근로계약서 같은 계약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스타트업이라는 로켓에 탑승하는 이유를 경영진 및 구성원들과 명확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굳이 계약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명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 지금 회사에 연봉이 무지막지하게 깎이면서도 지분도 없고 스톡옵션도 없이 합류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조직 문화의 유리벽, 경영진의 DNA 문제, … 등등 너무 많은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그러한 제약 사항 없이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지 입사하고서도 한참 동안을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닳았고, 하필 그 계기가 제가 이 회사에 합류한 단 하나의 이유가 무참히 깨질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저도 크게 반성을 하고 저와 같이 일하기로 마음먹은 개발팀 동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시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프라인 비지니스는 특히 더 어렵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권도균대표님 페북글(https://goo.gl/TG4zwJ)에서 더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오프라인 비지니스가 주먹구구식이라 온라인의 기술을 접목하면 당연히 잘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오프라인을 경험하니 바닥부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일을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볼때는 쉬운 문제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들이 그렇게 일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있고 그 근간에는 법적인 규제도 있고 업계 관행이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나마 저희 회사는 ‘다이소’라는 브랜드가 있는 회사의 계열사이기 때문에 좀더 큰 사업 기회를 엿보느라 파트너사들이 협조적으로 이것저것 차근차근 알려주는데, 만약 저희가 아무것도 없는 진짜 듣보잡 스타트업이었다면 몇년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서 직접 겪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이소라는 브랜드와 200만이라는 회원을 가지고 있으니 오프라인에서 기회를 엿보던 파트너사들과 제휴 협상을 상당히 많이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들이 사실은 수십년간 쌓은 노하우이고 소위 ‘책에서 배웠어요’로는 근처에도 가지 못할 엄청난 내공을 느끼게 됩니다.

소위 O2O라고 Online이 Offline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바닥을 철저하게 이해하거나 그들의 바닥을 이해하는 파트너사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시장에 먼저 진입했던 업체들이 해왔던 소위 ‘선도적 망치기’ 덕분에 온라인 업체에 대한 불신이 바닥에 깔려 있어서 사업 환경은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업 돈은 받으면 안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는 ‘다이소’가 속해있는 한웰그룹이라는 지주회사가 사업 초기에 투자를 해서 재무재표상으로는 계열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룹사가 오프라인 회사이다보니 오프라인 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제휴에 있어서도 당장의 이익보다는 그룹사 후광으로 인한 기대심리로 인해서 제휴나 사업 기회가 참 다양하게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업은 고유의 DNA가 존재하고 돈을 투자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익숙한 문화를 심으려고 하거나 기존 기업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장 수익을 내기 전에 회원을 모으고 제휴사를 묶어서 그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가치가 선순환하도록 사업 구조를 설정해야 하려면 ‘돈’외에 ‘시간’이라는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경험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특히나 나름 그들의 세상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했다는 이유로 요구하는 것들이 사업의 핵심 모델을 깨뜨리는 것이 명확한데 무작정 저항할 수 많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 기업으로부터 투자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싶어해서 당시 프라이머 이택경사장님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말씀하신 것이 스타트업은 기업 돈을 받지 않으니, 돈 대신에 스타트업에 부족한 기술이나 인력에 대해서 현물투자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이유였었나보다 싶었습니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전혀 새로운 상황도 아니고 페이스북에 떠돌던 좋은 글에서 읽었던 내용들인데 경험하고 나서야 이런 이야기구나 느끼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앞으로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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